카테고리 없음

kgkgyya815 2026. 7. 7. 10:44

이이모리센겐신사 飯森浅間神社
현재 코노하나사쿠야히메를 모시는 센겐신사로, 과거에는 이이모리묘진(飯守明神)으로 불렸습니다. 이름을 풀이하면 "飯식량을 守지키다"가 됩니다. 이는 겐페이전쟁 당시 겐지군이 이곳에 식량을 두고 지키게 한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이모리센겐 신사에 대한 기록은 부족해서 정확한 신앙체계의 변천은 불명이나, 구전에 의하면 원래 이곳에는 카구야히메를 모시던 시녀가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과거 카구야히메의 시녀가 모셔져 있었다.)


우루이카와潤井川
후지산엔기에는
"카구야히메가 후지산으로 오를 때, 사람들의 눈물이 강이 되어 생긴 것이 우루이카와다(赫夜姫が富士山に登る際に、人々は涙を流し、その涙が川となった。それが潤井川である)"라는 설명이 등장합니다. 본래는 우루이가와(憂涙河), 즉 “근심과 눈물의 강”이라 불렸고, 현재의 우루이가와(潤井川)가 되었습니다


테고노요비자카
만요슈 권14에는 “동국으로 가는 길에 테고노요비자카를 넘지 못하고...", "그이가 테고노요비자카를 넘어 떠난다면..."으로 총2번 테고노요비자카란 지명이 등장합니다. 이 테고노요비자카의 위치 중 하나로 “타고노우라(田子の浦)의 언덕"이 꼽힙니다. 이는 스루가만의 해안부분을 뜻하는데, 같은 스루가 만에 위치한 후지시 하라다에 테고노요비자카라는 지명이 남아있습니다.
후지시 하라다에는 독자적으로 "하라다의 테고노요비자카"라는 민담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민담의 내용은 이와 같습니다.
"옛날 마쓰바라강 근처에 매우 아름다운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사모했지만 정작 그녀에게 말을 걸 용기는 없었습니다. 어느 초여름 저녁 반딧불의 빛이 그녀를 둘러싼 가운데 아시타카산 너머에서 온 아이누 청년이 그녀에게 마음을 전하며 둘은 연인이 됩니다.
그녀는 늘 작은 언덕길 위에서 청년을 기다렸고, 아이누 청년은 매일 그녀를 찾아와 언덕길 위의 그녀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처녀를 사모하던 마을 사람들이 두 사람을 방해해 더이상 처녀를 만나러 오지 못하자, 처녀는 그 언덕에서 청년을 애타게 부르며 야위어 갑니다. 끝내 처녀는 반딧불 무리에게 둘러싸여 꽃수레에 실린 채 하늘로 올라 아시타카산을 향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언덕의 이름이 처녀手児부름呼언덕坂으로, 테고노요비자카手児の呼坂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테고노요비자카는 후지산 남록지역에 퍼져있는 히나카구야히메 이야기와 혼재하여 手児=카구야히메로 받아들여져, 카구야히메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전승도 전해내려옵니다.
직접적인 선후관계는 불명이나, 처녀를 둘러싼 빛과, 하늘로 처녀가 올라 사라지는 장면으로 인해, 이 민담의 형성에 카구야히메가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카코이노미치囲いの道
히나카구야히메 전설에서 카구야히메가 후지산으로 올라 사라질때 이용한 길로, 과거 이곳에는 후지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소로가 있었습니다. 카코이노미치囲いの道라는 표기와 더불어 카요이노미치通いの道로도 쓰이는데 이는 카구야히메가 국사가 있는 곳까지 이 길을 통해 갔다는 전승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후지시립 요시와라 중학교 부근에서 요시와라 공업고등학교 서쪽의 길로 여겨집니다.
(카구야히메가 후지산을 오를때 사용한 길)


미카에리자카見返り坂
"뒤돌아보는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소지명으로, 카코이노미치와 이어집니다. 카구야히메가 카코이노미치를 통해 후지산으로 올라갈때, 이별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곳에서 마을을 여러번 뒤돌아봤다는 전승이 남아 있습니다.




나카자토하치만구中里八幡宮
아시타카산의 나카자토하치만구에 사토미야(里宮)가 되는 신사로, 스루가키(駿河記)에 따르면 가마쿠라시대 후기에 창건되었습니다. 나카자토하치만구는 스도에 진좌되어 있기때문에 스도하치만구(須津庄八幡宮)로도 불리며, 진수사(鎮守社)로 기능했었습니다.
하치만신인 오진천황과 진구황후를 주신으로 하나, 아시타카묘진과 이누카이묘진도 합사되어 함께 모셔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카구야히메의 양부모로, 각각 타케토리노오키나와 타케토리노오나가 신격화된 존재로 여겨집니다.
(카구야히메의 양부모를 신격화한 아시타카묘진과 이누카이묘진이 모셔져고 있다.)


칸치쿠센겐신사
현재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를 모시는 센겐신사이나, 이는 메이지시절 신불분리령에 의해 개칭한 것입니다. 기존에는 본지수적설에 따른 곤겐사로, 칸치쿠곤겐(寒竹権現)이나 고신곤겐(子神権現)으로 불렸습니다.
신사의 유래문에 따르면 과거 하치로에몬(八郎右衛門)이라는 사람이 꿈에서의 계시로 인해 아카부치카와(赤渕川)에서 코노카미 곤겐(子の神権現)으로 불리는 돌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돌이 등을 타고 올라와 집터에 모시라고 했고, 그렇게 코노가미 곤겐을 신체석으로 하여 칸치쿠곤겐사가 세워졌습니다. 신사의 이름에 칸치쿠(한죽)가 있는 것은 과거 신사 주위에 가을~겨울 죽순이 올라오는 대나무의 품종 한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제신이 카구야히메라는 전승도 존재합니다. 스루가키(駿河記)의 "칸치쿠 곤겐사" 에는 이 땅(칸치쿠 곤겐사의 부지)에서 타케토리노오키나가 카구야히메를 발견했으므로, 이에 카구야히메를 모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루가키(駿河記)에 따르면 칸치쿠 곤겐사의 부지에서 타케토리노오키나가 카구야히메를 발견했으므로, 카구야히메를 제신으로 하여 모셨다.)



타케토리공원
1991년 4월 23일에 개원한 공원으로, 히나지역에 전해내려오는 카구야히메의 전승과 결부하여 전승의 무대로 조성되었습니다.
이곳엔 눈여겨 볼만한 유적이 두가지 있는데, 하나는 하쿠인선사의 묘소(白隠禅師墓所)이고, 또 하나는 타케토리즈카(竹採塚)입니다.
본래 이곳엔 메이지 초기까지 임제종의 하쿠인 선사(白隠禅師)가 재건한 무료주젠지(無量寿禅寺)라는 사찰이 존재하고 있었고(메이지시기 신불분리령으로 인해 폐사), 그에 따라 이곳에도 선사의 유골이 분골되어 묘소가 세워졌습니다.
하쿠인 선사의 케이소도쿠즈이(荊叢毒蘂) 무료주젠지 창건기(無量寿禅師草創記)에 따르면 하쿠인 선사 역시 이 땅(현재의 히나지구)을 카구야히메가 탄생하고 자란 곳으로 성스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또한 공원 부지에는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1.14m높이의 허총이 있습니다.
화산석으로 이루어진 돌무더기 위에 "타케토리히메(竹採姫)"라고 새겨진 달걀 모양의 석비가 올려져 있어 타케토리즈카(竹採塚)로 불리며, 이 타케토리히메는 카구야히메를 뜻한다고 여겨집니다.
이런 유적지와 전승을 토대로 타케토리공원은 카구야히메와 관련있는 요소를 공원에 조성했습니다. 히나카구야히메전승에 등장하는 국사를 모티브삼은 국사의 정원(国司の庭)과 카구야히메가 후지산으로 올라가며 마을을 돌아봤다는 미카에리자카의 재현이 그것입니다.
(공원 내에는 "타케토리히메(竹採姫)"라고 적혀진 석비가



오이와 코야스 신사
후지노미야시에 진좌한 오이와코야스 신사는 이름(큰 바위 안산)에서 알 수 있듯이 이와쿠라신앙(바위신앙)과 코야스신앙(안산신앙)이 결부된 신사입니다.
스루가 시료(駿河志料)에 따르면 본전 뒤의 큰 바위를 이와쿠라로(이 신사가 진좌한 "오이와"라는 지명도 이에 유래), 호에이4년의 후지산 분화(1707)로부터 약 10년 후 세워졌다고 합니다. 이 신사는 원래 오오이와 고젠샤(大岩御前社)로 기재되며, 이누카이묘진(犬飼明神) 또는 코야스묘진(子安明神)을 모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신 모두 코야스 신앙에 관계있는 제신입니다.
코야스묘진은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불타는 산실에서 니니기의 세 아이를 무사히 낳아 안산의 신으로도 여겨짐)이며, 이누카이 묘진은 카구야히메를 기른 양모 타케토리노오나입니다.
현재 제신은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 단독인데, 이는 메이지에 이르러 제신이 통일된 것입니다.

또한 특이한 점으로 신사 앞의 도조신 2기가 있습니다.
좌측 도조신은 파손이 심한데, 이는 돈도야키(どんど焼き)로 인한 것 입니다. 모토오이와(元大岩)에서는 과거 코야스 신사 아래에서 돈도야키를 했고, 그때마다 도소진을 옮겨 불에 넣었으나, 현재는 이동 곤란 등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우측 도조신은 토리이 조각 아래 쌍체상을 새긴 특이한 형식으로 후지노미야시 내에서는 이곳에서만 확인됩니다. 이는 나가노현의 스와, 마쓰모토, 아즈미노 등지에서 보이는 형식입니다.
-카미코이즈미하치만구
오이와코야스 신사의 타케토리노오나와 대구를 이뤄 과거 아시타카묘진으로 불린 바위가 있었습니다.


시보쿠사 센겐 신사
야마나시현 오시노 핫카이 부근의 시보쿠사 지역에는 신체로 세 신상을 모시는 센겐 신사가 있습니다. 이 신상들은 비공개되어 있으나, 여신상 1체와 남신상 2체로, 여신상은 신사의 주제신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 남신상 2체는 상전신 니니기노미코토와 오야마쓰미노카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명은 신불분리를 거치며 메이지 초에 바뀐 것입니다. 메이지 이전에는 아사마오오카미(浅間大神,=현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 아시타카오오카미(愛鷹大神,=현 니니기노미코토), 아시가라오오카미(足柄大神,=오야마쓰미노카미)로 불렸으며, 전승상 이들은 순서대로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 타카가이(鷹飼 매를 길들이는 사람), 이누카이(犬飼 개를 길들이는 사람)로 인식되어왔습니다.

해당 신상은 바닥에 쇼와4년(1315) 제작되었다는 묵서가 있어 가마쿠라시대 말기에 제작되었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후지산의 제신은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로 여겨지지 않았고, 제신으로 카구야히메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카구야히메의 양부모는 아시타카묘진과 이누카이묘진으로 각각 신격화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래 세 신상은 카구야히메, 아시타카묘진(타케토리노오키나), 이누카이묘진(타케토리노오나)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아시타카묘진의 신상에 긴 두발의 채색흔적이 보이므로, 현 타카가이의 신상이 본래는 이누카이묘진(타케토리노오나), 현 이누카이의 신상이 아시타카묘진(타케토리노오키나)이 되어 여신상2체와 남신상1체로 제작되었을 것이란 주장도 제기된 바 있습니다.
(카구야히메와 양부모를 나타낸 것으로 추정되는 세 신상을 신체로 하고 있다.)


후지산 카구야히메 뮤지엄
후지산 카구야히메 뮤지엄은 1981년 개관한 후지시립박물관이, 전시와 시설을 카구야히메를 주제로 하여 재구성 한 후, 2016년 4월 29일 재개관한 박물관입니다. 타케토리모노가타리의 판본들과, 카구야히메와 관련있는 후지산대연기를 비롯하여 수많은 연기류의 자료들을 전시 및 소장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