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구야히메가 후지산으로 돌어간다는 소문이 퍼지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별을 아쉬워했습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후지산을 두려워하여 산속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카구야히메가 산을 오르자 이별의 아쉬움에 그녀를 뒤쫓아 산으로 행합니다.
하지만 카구야히메는 이를 알고 나카잔도의 자리까지 되돌아와, 이곳에서 작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타케토리노오키나와 카구야히메는 그곳에서 이별의 와카를 주고받습니다.
타케토리노 오키나가 와카를 지어
「世を憂しと思ひ出にし世捨て人と何に床しとや立帰るらん」
세상을 괴로이 여겨 떠나 버린, 세상을 등진 그대가, 무엇이 마음에 걸려 다시 나타난 것인가
라고 애통해하자
카구야히메는 그 답가로
「世を憂しと思ひ出し心より厭はぬ人を立ち返りて見る」
괴로운 세상을 떠나려했지만,
나를 마음깊이 위하는 자들을 위해 다시 돌아와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라고 그동안의 고마움을 전하며 다시 후지산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후지산 연기 계통에서는 카구야히메가 후지산에 오른 이때부터 남성은 산정까지, 여성은 산중의 나카잔도 하치만당까지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인근의 뇨닌도에서 예배하고 하산)고 서술합니다.
옛 오미야·무라야마구치 등산로(大宮・村山口登山道)의 고도 약 1,250~1,280미터 부근에 존재하는 나카자토 하치만당은 말이 이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우마가에시(馬返し)기도 했습니다. 이는 신역과 현세의 경계를 나누는 장소였기 때문이며, 또한 나카잔도부터 본격적으로 경사가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본래부터 나카잔도는 신역의 경계였으나, 본격적인 하치만당은 후지산 등산객이 폭증하는 센고쿠시대, 스루가 영주 이마가와 우지테루(今川氏輝, 1513∼1536)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나카자토 하치만당 일대에는 말 대기소, 곤고즈에(지팡이)판매소, 관리인실(무라야마에서 파견), 휴게소등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무라야마 등산로가 쇠퇴하는 메이지 시기를 기점으로 서서히 붕괴되었고, 현재의 작은 사당은 헤이세이 9년인 1997년에 세워졌습니다.

1902년, 나카잔도 하치만당
나기 모리오 소장(奈木盛雄蔵)